내가 대학에서 본 일이다. 늙은 복학생 하나가 취업정보실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4.3 짜리 성적증명서 한 장을 내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성적으로 취직이나 할 수 있는지 좀 보아 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취업담당의 입을 쳐다본다.
직원은 복학생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성적표를 대충 훑어보고 "좋소" 하고 내어 준다. 그는 "좋소" 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성적표를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 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다 보며 얼마를 가더니, 또 중앙광장 취업 부스를 찾아 들어갔다. 품 속에 손을 넣고 한참을 꾸물거리다가 그 성적표를 내어 놓으며,
"이것이 정말 평점 4.3 입니까?"
하고 묻는다. 대기업 직원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다보더니,
"이 성적을 어디서 고쳤어?"
복학생은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예요."
"그러면 교수한테 빌어서 받았다는 말이냐?"
"누가 그렇게 성적을 올려줍니까? 올려주면 상대평가는 안 하나요? 어서 도로 주십시오."
복학생은 손을 내밀었다. 대기업 직원은 웃으면서 "좋소" 하고 던져 주었다. 그는 얼른 집어서 가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 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그 성적표가 빠지지나 않았나 만져보는 것이다. 잉크 묻은 손가락이 외국어학원 파일 안으로 그 성적표를 쥘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어떤 골목 으슥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벽돌담 밑에 쭈그리고 앉아서 성적표 손바닥에 들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얼마나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간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가 그렇게 많이 올려 줍디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말소리에 움칠하면서 성적표를 가슴에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같이 수강하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고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올린 것이 아닙니다. 교수한테 잘 보여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놈에게 4.3를 줍니까? 족보 한 번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필기 보여 주시는 분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한 장 한 장 얻은 프린트로 몇 장씩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은 교재로 재수강을 해 씨뿔을 에이로 바꾸었습니다. 이러기를 여섯 번을 하여 겨우 이 귀한 4.3 학점 한 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학점을 얻느라고 졸업보다 두 학기가 더 걸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성적을 만들었단 말이오? 어차피 취직도 안되는데 그 성적으로 무엇을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냥, 4점을 한번 넘어보고 싶었습니다."
출처 : 모름 (퍼온 것 또 퍼옴)